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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기도하는데 응답받지 못할까?
나 또한 가족 구원 같은 중요한 기도에 대해서 아직 응답받지 못했다.
아직 기도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마태복음 7장 7-12절을 보면,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대목을 보면, 마치 하나님께 달라고 간청하면 다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대목을 보면 이상합니다.
12절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라는 접속사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것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22장 34-40절을 보면 좋습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17장에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도 율법과 선지자라고 하며
마태복음 22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도 율법과 선지자라고 합니다.
남을 대접하라는 것은 이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너희가 대접을 받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면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그럼에도 우리는 구하는데 받지 못하는 것인, 우리가 아직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대접하고 있지 못하게 때문입니다.
감히 하나님께 구할 수 없는 그럼 기도 제목을 갖고 들어가고, 내 욕심 채우기 위한 기도 제목밖에 갖고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 '나'라는 개인으로만 존재하지, '우리 교회'가 얼마나 일했는가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얼마나 사역을 잘하고 있고, 철야, 새벽기도를 잘하고 있느냐와 관계없이, '내'가 얼마나 신앙생활을 제대로하는지 각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접하지 못하고 엉망으로 살았다는데 대해서 핑계대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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