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책100권

<한 말씀만 하소서>(박완서) 핵심요약

인생책100권 2022. 11. 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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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나누기 전에 박완서 선생님의 모습을 먼저 같이 봤습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나목'이라는 책으로 처음 선생님의 성함을 알게 되었는데, 실제 어떤 모습인지 보니 더 친근했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어렸을 적 모습도 봤습니다. 너무 아름답고 장난끼 넘치는 모습도 보입니다.

 

 

혹시 저자의 목소리를 듣고나서 그 저자의 책을 읽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자의 목소리를 알고나서 책을 읽으면, 책을 읽을 때 계속해서 저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박완서 선생님의 인터뷰 영상도 같이 봤습니다.

뭔가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를 예상했었는데, 생각보다 하이톤의 목소리라서 더 좋았습니다 ^^

 
 

◎ 故박완서 선생님의 삶 & 책 제목

‘한 말씀만 하소서’를 읽기 전 먼저 故박완서 선생님을 조금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은 1931년 출생으로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하셨습니다. 1953년 결혼하고 살림에 묻혀 지내다가 1970년 마흔이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하셨습니다. 마흔에 등단하셨다니 생각보다 늦었다는 느낌도 있지만, 이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셨겠지 라는 생각도 들고 마흔에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선배님께서는 40살이 되면 또다른 에너지가 나온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2011년 향년 80세로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님은 1988년 남편이 폐암으로 사망한 것에 이어 3달 후 정말 아끼고 사랑하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1남 4녀 중 막내였던 아들은 당시 25살, 서울대 의대, 성품도 온순하고 꿈이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셨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남편과 아들을 잃고 무너진 것입니다. 심리적인 고통으로 잠을 잘 수도 먹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맥주와 수면제를 먹어가며 신을 저주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이 고통과 극복하는 과정의 일기를 모아서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에세이를 출간한 것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었는지 하느님에게 ‘한 말씀만 해 달라’는 의미로 절절한 제목이 나왔습니다. 또한 카톨릭 성가 중에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곡이 있어서 제목으로 쓰신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실제로 성당 다니시는 선배님이 기도문 안에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문구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선배님은 성경에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자신의 하인을 고쳐달라고 부탁하면서 이 말을 했다고 말해주셔서 놀랐습니다.

◎ 참척의 고통

자손(子孫)이 부모나 조부모(祖父母)보다 일찍 죽는 것을 참척이라 합니다. 참척의 고통은 감히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가장 내밀하고 극심한 불가해의 상처 중의 하나일 것인데, 박완서는 그런 고통 속에서, 차마 환장하지 자신의못하는 자신의 강철과도 같은 이성을 저주합니다.

“정신의 고통이 어느 한계까지 차올랐을 때, 기절할 수 있는 장치가 돼 있는 몸을 가진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내 몸과 마음에는 불행히도 그런 장치가 빠져 있었다. 내가 자신을 독종이라고 저주하는 까닭도 바로 거기 있다.”

 

그리고 참척의 고통을 극형이라고 말하며 표현합니다.

"내가 이 나이까지 겪어본 울음에는, 그 울음이 설사 일생의 반려를 잃은 울음이라 할지라도, 지내놓고 보면 약간이나마 감미로움이 섞여 있기 마련이었다. 응석이라 해도 좋았다. 아무리 미량이라 해도 그 감미로움에는 고통을 견딜만 하게 해주는 진통제 같은게 들어 있었다. 오직 참척의 고통에만 전혀 감미로움이 섞여 있지 않았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극형이었다.”

 

사실 우리 전 국민이 이 참척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느낀 사건이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진짜 부모님들만큼은 아니지만 전 국민이 같은 마음으로 슬퍼했었습니다.

책을 보며 생각해봐야할 3가지 중점 사항을 보겠습니다.

1. 신을 저주하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삶과 죽음, 신의 문제, 성찰로 나아가다.

박완서 선생님은 참척의 슬픔 가운데 신을 저주하기 시작합니다.

“내 죄목이 무엇인지 알아냈다고 생각하자 조금 가라앉는듯하던 마음이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교만의 대가로 이렇게 비참해지고 고통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자. 그럼 내 아들은 무엇인가? 창창한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것은 가장 잔인한 죄악의 벌이라는... 그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벌을 받는단 말인가?

하느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인가? 사랑 그 자체라던 하느님이 그것 밖에 안 되는 분이라니......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아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저 만만한건 신이었다.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 내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왜 금쪽같은 자신의 아들을 데려갔는지 부조리한 인생에 대해 답변을 듣고자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향한 성찰과 반성을 하며 신에 대한 저주는 경배로, 교만은 겸손으로 바뀌어갑니다.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물질과 사랑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돼 있었다. 그 밖에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인에게 나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위선으로 사랑한 척한 적조차 없었다......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큰 죄라는 것을......나는 명료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구토를 일으키던 음식 냄새가 구수해지고 짐승 같은 식욕을 느끼면서 비참해진다고 말했었지만, 결국은 신의 말씀이 밥이 되어 왔다고 말합니다. 끔찍하다고 생각한 식욕이 신의 축복으로 바뀐 것입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밥풀이 섬뜩했다.”

“내 육신은 내 마음과는 별개의 남처럼 끼니때마다 먹고 살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내 육신에 대해 하염없는 슬픔과 배신감을 느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녀원에서 맡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 냄새를 떠올렸고, 어쩌면 주님이 그때 나에게 밥이 되어 오시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났다”

“하도 답답해서 몸소 밥이 되어 찾아오셨던 거야. 우선 먹고 살아라 하는 응답으로. 그렇지 않고서 그 지경에서 밥 냄새와 밥맛이 그렇게 감미로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침묵한 줄 알았던 신도 사실은 주위에 있었던 자연과 생기발랄한 수녀들과, 나눔 속에, 생명의 움직임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이 상처를 보듬어내고 글을 통해 우리에게 영혼을 치유해주는 작가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젊은 수녀님들의 명랑함은 자연의 명랑함만큼이나 순수하고 감동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수녀 생활을 세상일이 잘 안 풀린 여자들의 마지막 도피처쯤으로 여겨왔었다. 그러나......수도 생활은 이 세상 밑바닥에 깔린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 못 가진 이들, 버림받아 외로운 이들과 함께 있으려는 크나큰 용기라는 걸 확연히 알 수가 있었다.”

이러한 내면 심리의 묘사를 통해 저주, 분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서 한순간 사라지는 존재의 허무함과 사랑, 신, 생명의 본능을 깨달으며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아들을 잃고 속세를 떠났지만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리며 생명의 경외감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다시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은 내가 내 아들이 없는 세상이지만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내 아들이 없는 세상도 사랑할 수가 있다니, 부끄럽지만 구태여 숨기지는 않겠다.”

2. 탁월한 감정 표현과 심리묘사

생생하게 현실을 그려내면서 치밀한 심리묘사와 자신의 생각들을 풀어냅니다. 사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아들을 잃어서 너무 고통스럽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한 문장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독자 모두가 이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도 인생의 어떤 시점을 이렇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지,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예전에 글쓰기 강의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잘 쓰는 글이라는 것은 상황을 사실적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령 ‘냉면의 면발이 쫄깃하다.’라는 문장을 ‘냉면 면발의 쫄깃함이 면을 입에 물고 번지점프를 해도 될 만큼 탱탱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을 풍부하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나라 어른들이 뜨거운 물에 들어갈 때 ‘아, 시원하다’라고 하는 것을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하기기 어렵고, ‘썰렁하다’, ‘한’, ‘정’같은 다른 나라에 없는 개념이 있음으로써 우리가 삶을 보는 시야와 관점이 더 생기는 것입니다.

1) 참척의 고통은 정말 많이 나오지만 그 중에서도 인상 깊은 문장들을 적어봅니다.

“참척을 당한 에미에게 하는 조의는 그게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위로일지라도 모진 고문이요, 견디기 어려운 수모였습니다.”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본다.”

“내 아들이 없는데도 온 세상이 살판난 것처럼 들떠 있는 올림픽의 축제 분위기가 참을 수 없더니, 내 아들이 없는 세상 차라리 망해버리길 바란 거나 아니었을까.”

“그저 만만한건 신이었다.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 내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2) 수녀원에서 어떤 부인이 자기 딸이 신병에 걸렸다며 통독하자, 박완서는 자신의 남편은 폐암으로 죽고 아들은 3개월 만에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말하며 자신은 고통에서조차 교만을 떨게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나는 부인의 얼굴에 생기가 돈 것을 분명히 보았다. 부인도 아마 순식간에 자기의 근심이 가벼워진 것에 놀라고 있겠지. 세상엔 남의 불행이 위안이 되는 고통이 얼마든지 있다...... 남의 고통에 쓸 약으로서의 내 고통, 생각만 해도 끔찍한 치욕이다."

“내 고통에다 대면 당신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깔보는 마음까지 생겼다......어쩌자고 고통에서조차 교만하고 싶어하는가?”

남의 고통을 가지고 내 삶을 위안삼고, 약으로 쓴다는 부분은 모임을 하는 선배님들도 공감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3) 바다 풍경을 묘사

"오늘의 바다 빛깔은 오염이 심할 때의 한강의 해빙기 같다. 해변 가까이는 얼음판 같은 빛깔이고 먼 바다는 탁한 회색이다. 그리고 그 두 빛깔 사이의 경계 또한 강의 얼음장이 수심이 얕은 데만 남아 있을 때처럼 부드럽고 모호하다. 수평선도 다른 날보다 훨씬 다가와 보이건만 대마도는 지워진 듯 안 보인다. 나는 이런 풍경을 망막에 새기듯이 무턱대고 마냥 주시한다.”

4) 아들이 어렸을 적 비 맞고 학교에서 왔던 모습 묘사

“비에 젖을수록 체온이 뜨거운 건강한 사내아이한테서는 흙과 식물과 동물을 합친 것 같은 강렬하고도 싱그러운 생명의 냄새가 풍겼었다. 그 애에게서 생명이 없어지다니. 들꽃으로라도 풀로라도 다시 한 번 피어나렴.”

혹시 남자 아이들 냄새나면 이렇게 표현 해주세요 ^^

5) 그레고리안 성가 묘사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는 수녀님들의 목소리는 귓전이나 감정에 남는 찌꺼기가 전혀 없이 투명하다. 영혼을 울리는 영혼의 소리라고나 할까?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고 있으면 내 안의 감정과 이성을 포함한 마음이라는 것과는 따로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것이 미묘하게 떨고 있음을 느낀다. 성가가 현(絃)이고 영혼이 악기인 양.”

그리고 그레고리안이라는 것은 장르중에 하나로 여러가지 성가가 있는데 실제로 들어봤습니다. 저희 모임에서는 큰 느낌은 없었는데, 성당을 다니시는 선배님이 성당에서 울리는 소리로 들으면 더 좋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사실은 책의 아무 곳이나 펴서 읽어도 모든 표현들이 탁월합니다. 어떻게 똑같은 장면과 사건을 겪어도 이렇게 다르게 표현 할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3. 참척의 고통, 어떻게 극복했는가?

정확히 말하면 박완서 선생님은 고통을 극복했다기보다, 고통과 더불어 살 수 있게는 되었다고 책 초반에 밝히고 있습니다.

1) 책 마지막 부분에 가족들과의 추억을 통해 홀로서기를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나의 홀로서기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가까이서 멀리서 나를 염려해준 여러 고마운 분들을 비롯해서 착한 딸과 사위들, 사랑스러운 손자들 덕분이다.

나만이 알고 느끼는 크나큰 도움이 또 있다. 먼저 간 남편과 아들과 서로 깊이 사랑하고 믿었던 그 좋은 추억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설사 홀로 섰다고 해도 그건 허세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는 요즈음 들어 어렴풋하고도 분명하게, 분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이런 도움이야말로 신의 자비하신 숨결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2) 박완서 선생님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의 죄를 깨닫고 기도합니다. 자신에게는 죄가 없기에 신에게 당당하게 대들 수 있었는데 그 유일한 도덕적 근거가 사라지면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물질과 사랑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돼 있었다. 그 밖에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인에게 나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위선으로 사랑한 척한 적조차 없었다......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큰 죄라는 것을......나는 명료하게 깨달았다”

3) 시간이 지나가면서 고통과 불행의 크기도 사라져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조금씩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새로운 소설도 썼고, 중단했던 장편 연재도...... 다시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은 내가 내 아들이 없는 세상이지만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내 아들이 없는 세상도 사랑할 수가 있다니, 부끄럽지만 구태여 숨기지 않겠다."

4) 무엇보다 이러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점은,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어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수녀님의 속세의 친구에게 하는 소리가 문득 내 관심을 끌었다.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 얘기였다. 남동생이 어찌나 고약하게 구는지 집안이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왜 하필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 비관도 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세상엔 속 썩이는 젊은이가 얼마든지 있다. 내 동생이라고 해서 그래서 안 되란 법이 어디 있나?' '내가 뭐관데.....'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동생과의 관계도 호전이 되더라고 했다. '왜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와 '왜 내 동생이라고 저러면 안되나?'는 간발의 차이 같지만 실은 사고의 대전환이 아닌가. 나는 신선한 놀라움에 그 예비 수녀님을 다시 바라보았다.....

“송별회에 나와 준 수녀님들 중에는 조 테레사 수녀도 있었다. 그녀는 착해 보인다는 것 말고는 드러나지 않는 평범한 수녀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특별한 수녀였다.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하는 원망으로 똘똘 뭉친 내 마음에 “왜 당신이라고 그런 일을 당하면 안되는거죠?”라는 당돌한 반문을 불러 일으킨 수녀였다. 그녀는 알까? 그녀가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가 내 딱딱한 마음에 일으킨 최초의 균열에 대해..."

◎ 결론

처음 책을 선정할 때는 박완서 선생님의 인생을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참척의 고통을 나의 고통과 견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오만한 것이기도 하고, 적당한 표현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통의 크기보다는 이를 통해 도달하게 되는 깨달음의 깊이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박완서 선생님의 삶을 통해 ‘나에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라는 발상의 전환과 생명의 소중함/허무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태어난 이유와 사랑만 하기에도 짧은 인생,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평화, 가족의 소중함을 박완서 선생님의 일기를 통해 다시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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