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사유의 시선> 어떻게 선진국이 될 것인가
예전에 우연히 TV에서 최진석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너무 좋아서 유튜브에서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철학자들만의 강력하고 압축된 단어와 이론이 주는 감동이 참 좋았습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1. 도입
최진석 교수님은 건명원이라는 곳을 운영하시기도 합니다.
반역자 양성소라고 하는데,
지금과 다른 새로운 것을 연다는 의미로 쓰신다고 합니다.
'명'은 한자로 해와 달이 같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한쪽에만 치우치지 말고 배우자는 의미입니다.
'원'은 들판 원자로 테두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역사적 매커니즘을 모르고 살기에, 선진국에 많이 치이고 살아왔는데,
이 책에는 이를 원론적인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무엇보다 책이 쓰여진 이유는 아래가 핵심입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 미숙하다면, 자본가와 시민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돈은 많아도 그것이 자본으로 성숙되지는 않았다.
부자는 있지만, 자본가는 희귀하다.
국민이나 백성은 있어도, 시민은 아직 제대로 자라나지 못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돈이 자본으로 바뀌고, 부자가 자본가로 바뀌어야 한다.
백성이 시민으로 바뀌어야 한다.
돈, 부자, 백성이 자본, 자본가, 시민으로 바뀐다는 것은 사적인 범위 안에 갇혀 있는 시선을 깨고 나와
역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책임성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사적인 시선에서 나와 공적인 책임성을 발휘해야 하는 기점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2. 선진국 vs 후진국
최진석 교수님은 아편전쟁을 굉장히 중요한 사건으로 봅니다.
1840년에 발발한 아편전쟁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완전 승리', '서양에 의한 동양의 완전 패배'를 의미합니다.
동아시아에 서양 철학이 들어온 일은 산업혁명 이후에 힘이 커진 서양의 제국주의 역사와 닿아있습니다.
중국은 이 격차를 좁히기 위해 양무운동을 통해 과학기술문명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더 큰 제도와 정치를 배우기 위해 변법자강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또 그 이면에는 철학, 사상, 윤리, 도덕, 문화라는 것을 알고 신문화 운동에 들어갔습니다.
근본을 바꿔야 합니다.
서양이 동양보다 우세한 것은 사유의 높이에서 나온 것입니다.
삶의 형식의 높이에서 온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게 중국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또 받아들였습니다.
사상이 아닌 철학을 수용했습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3. 우리나라의 현실
그렇게 보면 '한국 사회는 철학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조금 과격한 발언이지만,
세계를 추상화해서 보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입니다.
철학이라는 추상적 방법론을 가지고, 정신과 사유를 다루는 것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철학자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철학이 아닙니다.
철학적 높이의 시선이란?
탁월한 사유의 시선, 사유라는 것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생각의 산물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생각을 하고 이를 구체화합니다.
철학은 생각 중에서도 높은 생각입니다.
자연을 이해하는 가장 높은 생각은 수학
문명을 이해하는 가장 높은 생각은 철학입니다.
생각이 높아지면 지배력과 통제력이 강화됩니다.
이것이 선진국과 후진국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봉착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이 중진국에 남아있는 것은 철학이 부재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진국보다 먼저 만든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보면 답이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는 따라하기로 살아온 것이고, 따라하기로는 가장 높은 곳으로 왔지만 한계입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4. 철학한다는 것?
그렇다면 여기까지만 살것인가?
아닙니다. 도전해야하고, 탁월한 시선의 높이, 곧 철학적 높이를 높여야 합니다.
철학적 사유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용기가 필요하고, 이는 쉽지 않습니다.
익숙함과 결별해야 하고, 고독해야 합니다.
이를 자연스럽게 이루려면,
자신만의 고유한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 꿈에 의해서 다른 것들이 보이고, 해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꿈은 나의 익숙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꿈의 가능성과 효과를 묻는 것은 좋은 계획이지 좋은 꿈은 아닙니다.
새로운 지식을 넓히려면 꿈을 꾸는 용기를 꿔야 합니다.
꿈을 가지고, 철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질 때, 사람은 고유한 자신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살아가고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질문의 향연장이 없어집니다.
옳고 그른 것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질문이 많은 나라가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이 많은 나라입니다.
개인도 질문이 많아야 생동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하는 법은 뭘까?
없습니다....다만 질문이 중요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나만의 궁금증과 호기심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만의 생각과 꿈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내가 원하는 것도 모를까요?
그런데 사회 안에서 있게되면 수동적이고 종속적이 됩니다.
철학적 사유를 잊게 됩니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경쟁에 빠져있다보니, 타인과 겨루고, 자신과 겨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타인과 겨루면서 자신은 없어집니다.
자신과 겨뤄야 단단해지고, 자신의 눈으로 나를 보게 됩니다.
타인과 경쟁하면,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나를 보게됩니다.
그런 점에서 경쟁이 치열한 사회는 진보도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쟁 시스템은 이미 있는 시스템을 지키는 것이고, 이 시스템이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스템으로 진보가 어려운 사회가 됩니다.
경쟁 구조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직업을 선택할 때 성찰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내 욕망보다 사회의 욕망으로 삶을 경쟁하면 안됩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5. 지식 수출국이 되자
철학은 국가 발전의 기초입니다.
철학은 현실과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지식 생산국이 아니고 수입국입니다.
지식 생산자들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고, 윤리적이고 공적인 훈련을 받지만
수입자들은 문제의 원인과 해결 능력을 갖지 못합니다.
선도력이라는 것은 창의력뿐 아니라
사람의 높이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정신입니다.
이 세상의 높이는 그 사람의 높이입니다.
철학적 시선을 갖는 것은 기능이 아니라, 가장 높은 차원에서 자신의 삶과 생각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의 결과를 공부하는 것을
자기가 철학하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철학자가 낸 처방전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 처방전이 우리 시대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6. 독립적 주체가 되자
'나'라고 하는 자아의식은 자기로 부터 생산된 것이 아니라
사회 부터 만들어진 보편적 인식을 내면화해서
나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명품백, 유행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입니다.
정말 내 욕망인지, 강요된 욕망인지 구분하면서부터
주체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독립적 주체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고독과 용기를 내야 합니다. 여기서 위대함이 나옵니다.
안전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로만 사회가 채워지만 위대함은 없습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있는 것에 대해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평면적인 지식입니다.
진짜 아는 것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모르는 것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치는 것입니다.
이 발버둥 치는 곳이 선진국입니다.
후진국은 모험심과 용기가 없어서 발버둥치지 않습니다.
물론, 제도적 측면도 필요합니다.
사회적으로 질문이 허용되고, 개성 있는 개인들이 존중받는, 자신만의 욕망을 발현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도적으로 만드는 것을 기다리기만 할 수 없습니다.
제도가 없어도 가능한 영역들이 있기는 합니다.
개인들이 문화와 제도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직업'에서 '직'은 하나의 역할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구현한다는 것입니다.
그 '직'은 자신의 '업'이 됩니다.
'직'이 내가 맡은 역할이라면, '업'은 사명 혹은 자아실현을 의미합니다.
'직업'이라는 말은 자신이 찾은 역할을 통해 자기를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과 '업'은 일체입니다.
이때서야 우리는 자신을 살아 있고, 행복하고 충족감을 느낌니다. 민감성과 예민함, 몰입도가 유지되고 창의적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돈 몇 푼에 영혼을 팔지 않고, 부패하지 않고, 몰입하고, 창의적인 도전을 합니다.
그러나 '직'과 '업'이 분리된 사람들로 채워진 조직에는 부패가 만연하고 생기가 없습니다.
우리는 '업'을 찾아내야 합니다.
개인의 시선과 격을 높이는 것이 국가 발전과 직결됩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7. 기타
혁명이 완수되지 못하는 이유는 혁명을 하려는 사람이 먼저 혁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함석헌 선생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혁명 하려는 사람이 먼저 성숙되어 있지 않으면, 그 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 개인의 성숙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격적으로 상당한 성숙에 이른 사람은 혼자가 아니고, 반드시 동조하는 사람이 생긴다"(덕불고, 필유린)
무엇인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이루는 일정한 범위를 '장르'라고 합니다.
어떤 나라가 문화적인가 아닌가, 선진국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장르'를 만들 수 있는지의 여부로 결정됩니다.
장르를 만드는 나라는 문화적 차원에서 움직이고, 이를 수입하는 나라는 아직 문화적이지 않습니다.
장르를 만들면, 그 장르가 새로운 산업이 되어서 경제적 성취를 이루고, 경제적 성취가 힘을 형성해 앞으로 나아갑니다.
장르-선도력-선진은 이렇게 연결됩니다.
'장르'를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그건 바로 '꿈'입니다.
각자 개인들은 꿈이 있느냐 없느냐로 독립적이냐 아니냐를 보여줍니다.
내가 지금 고유한 자신으로 고품격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 그 여부를 알고 싶다면,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꿈이 있는 사람은 선도적 삶을 살고, 꿈이 없는 사람은 종속적 삶을 삽니다.
피아노 잘 치는 사람을 연주자(피아니스트)라고 합니다. 그렇게 피아노 기능을 잘 다루다가 더 이상 구현할 것이 없으면, 다음은 음악가(뮤지션)이라고 합니다.
음악가가 음악의 이론과 체계를 완벽하게 구현하다가, 더 이상 구현할 것이 없으면 음악 전반을 포함하는 '더욱 더 넓고 높은' 단계로 훌쩍 상승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음악 활동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 죽음, 슬픔, 영웅, 운명 등 같은 주제를 말하기에 이르는데, 이제 '인간'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문명의 방향을 제시하고, 인류의 본질을 새로 규정하고자 덤비는 이 단계를 우리는 예술가(아티스트)라고 부릅니다.
피아노 연주자-음악가-예술가, 이렇게 3단계로 나눠놓고 보면,
피아노 연주자에서 음악가로 가는 난이도가 '5'정도 된다면,
음악가에서 예술가로 올라서는 일은 '50,000'정도 될 것입니다.
연주자에서 음악가 수준까지는 이미 있는 이론과 체계를 구현하는 것이지만,
예술가는 아직 없는 길을 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있는 것을 따라하거나 재생하는 일은 탁월한 활동일 수 없고 문명의 지표가 될 수 없습니다.
없는 것을 여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인간에게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있습니다
음악가 수준에서 예술가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 칠 때 이것이 발휘될 것입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책을 보면
결국 우리의 환경/행동/능력을 뛰어넘는 것은 믿음/정체성/정신/영성/철학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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